전문가 칼럼

BIMP-EAGA의 해양안보와 해안경비대

등록일 2023.04.27

 

 

이숙연 국방대학교 교수

 

 

‘해양안보’는 탈냉전과 더불어 안보의제가 군사 중심의 전통안보를 넘어 확대되고, 국제사회가 해양에서 발생 가능한 각종 불안전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유행어처럼 등장했다. 현재 해양안보에 관한 합의된 정의는 없으나, 해양환경·경제발전·국가안보·인간안보의 개념을 수용한다는 측면에서 1.해양환경 보호, 2.해양 거버넌스, 3.해양에서의 주권 보호, 4.해양에서의 군사활동과 신뢰구축, 5.해상교통로 보호의 관점에서 통합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 견해이다. 이처럼 해양에서의 안전과 안보가 중첩되고, 해양을 통한 안보 부문의 연계성이 확대되면서 주목받는 기관이 있다. 바로 해안경비대(Coast Guard)1)이다. 해안경비대가 해양주권 수호, 해양자원 보호, 해양안전 강화, 해양치안 확보, 해양환경 보호 등을 핵심임무로 하면서 상기 5가지 관점의 국가이익에 기여하기 때문이다.


동남아시아는 해안경비대 역사가 비교적 짧지만 최근 이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높아졌다. BIMP-EAGA 국가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바캄라(BAKAMLA)로 불리는 인도네시아 해안경비대는 2014년 ‘해상업무에 관한 법’에 따라 신설되었다. 이전 조직인 해상조정위원회(BAKORKAMLA)가 해양안보와 관련한 여러 기관(국방부, 교통부, 재무부, 법무부 등)을 조정하는 역할만 수행할 뿐 해양경비 능력과 법 집행 기능을 갖지 않았기 때문에 별도 조직을 창설한 것이다. 필리핀 해안경비대는 1967년 공화국법 5173를 통해 공식 명칭을 얻었으나 당시에는 해군 예하부대로 편제되었고, 1998년에 교통통신부 산하 민간 기관으로 이관되었다. 이후 2009년 ‘필리핀 해안경비대법’에 따라 별도의 기관으로 독립하였으며, 해양안전, 해양환경, 해양안보, 법 집행 및 해상 수색구조 등의 권한을 명문화함으로써 EEZ에서의 권리와 이익에 대한 1차 집행기관이 해군에서 해안경비대로 전환되었다. 말레이시아의 해안경비대 논의는 1999년 국가안전보장회의의 ‘말레이시아 해안경비대 설립에 관한 타당성 조사’ 보고서에서 시작되었다. 2004년 ‘해양법 집행기관 법’이 통과된 후 2005년 발효되어, 2006년 3월 21일 해안경비대가 공식 출범하였다. 이들과 달리 브루나이는 별도의 독립 조직이 아닌 해상경찰(POLMAR)의 명칭으로 경찰청에 속해 있어 역량과 임무가 제한적이며, 해군이 해양통제에 관한 많은 기능을 수행한다. 가령, ‘브루나이 어업법’에 따라 EEZ에서의 불법조업 감시, 통제, 법 집행 등의 임무는 주로 해군이 수행하며, 해상경찰의 집행 권한은 해안선에서 6해리까지로 제한된다. 이들 국가가 2000년대에 이르러 새로운 기관을 설립하거나 기존 해안경비대 역량을 강화하는 등의 변혁을 모색한 데는 경제성장에 따른 해운수요 급증, 반대급부로 야기된 해상범죄의 증가, 중국의 해경국 확장(5개의 해양 관련기관 중 4개 기관을 통합)을 통한 남중국해 영유권 강화 움직임 등이 작용했다. 


비록 늦은 출발이었지만 이들 국가는 최근 들어 해안경비대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자체 역량 강화와 역내 협력 확대에 주력하고 있다. 이는 해양을 통한 국익, 즉 해양안전과 관련한 ‘번영’, 해양주권과 관련한 ‘평화’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중국의 회색지대 전략 대응에 해안경비대가 유용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2010년 이후 특히 해안경비대 및 해상민병대 함선을 급격히 증가시키고, 어선, 어업감시선, 해양조사선 등 비군사 선박 운용을 확대함으로써 연안국의 군사적 대응 및 동맹체계 작동을 제한하고 있다. 1990년 이후 건조된 중국 해안경비대 선박은 64척으로, 미국(44척)과 일본(23척)을 넘어섰으며, 인민해방군 군함에서 전환된 20여 척을 포함해 150여 척의 함정을 보유하고 있다. 해안경비대의 이러한 양적 팽창은 주요 분쟁지역에 대한 순찰 확대로 이어졌다. 필리핀의 세컨드 토마스 숄(Second Thomas Shoal)에서의 순찰은 2020년 232일에서 279일로, 스카버러 숄(Scarborough Shoal)은 287일에서 344일로, 말레이시아 원유 및 가스 개발 지역인 루코니아 숄(Luconia Shoals)은 279일에서 316일로 각각 증가했다. 또한 인도네시아가 투나 블록(Tuna Block)의 유전 및 가스 개발 계획을 발표하자 중국의 최대 경비함 5901호가 2022년 12월 30일부터 나투나 해역에 진입하고 있다. 이 함정은 미 유도탄 순양함 크기의 2배에 달하는 1만 2천톤 급으로, 북나투나와 말레이시아 사라왁(Sarawak) 탐사 블록 인근을 집중 순찰한다. BIMP-EAGA 중 중국 해안경비대로 가장 큰 피해를 겪는 국가는 필리핀이다. 모든 남중국해 개발사업이 중단 중이며, 방해가 가장 심했던 리드뱅크(Reed Bank) 탐사는 2023년 초 재개 후 또다시 중단되었다. 주권 침해도 악화되고 있다. 마르코스 대통령은 취임 후 올해 2월까지 남중국해에서의 중국 정부의 불법조치에 대해 77건의 외교적 항의를 제기했으며, 중국이 필리핀 해안경비대를 염두한 군사용 레이저를 세컨드 토마스 숄 인근에 배치하자 지난 2월 몇 년 만에 중국대사를 소환했다. 특히 올해 3월에는 중국 군함 및 해안경비대, 해상민병대 추정 42척의 선박들이 티투(Thitu)섬 4.5~8해리에 정박했으며, 이는 영해에서의 무해통항과 필리핀 영토보존에 대한 명백한 위반 행위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동남아 각국은 해양주권 수호를 위한 경비력 강화에 힘쓰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2022년 ‘나투나 해역의 안보배양’ 예산 항목에 약 8억 5300만 달러를 배정하면서 해군 무기체계 개선(41%)보다 해안경비대의 장비(44%)에 더 많은 예산을 할당했다. 필리핀은 2018년 승인한 해안경비대 인력충원 계획에 따라 현재 23,000명까지 확대하였으며, 이는 24,000명의 필리핀 해군과 유사한 규모이다. 자체 역량강화와 더불어 의미있는 지역 협력도 시작하였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필리핀, 싱가포르, 베트남 등 6개국 해안경비대 회의가 2022년 2월 최초로 개최되었으며, 당시 인도네시아 해안경비대 사령관은 “9단선으로 괴롭힘을 당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우리가) 현장에 있다면 공동 행동을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역내 협력과 병행하여 해안경비대 능력 구축 및 중국 견제를 위한 미국과의 협력도 확대하고 있다. 필리핀은 2022년 미국, 일본 해안경비대와의 3자 훈련을 두 차례 실시하였으며, 올해 2월 미·필 해안경비대 공동순찰에 합의하였다. 인도네시아는 2019년 이래 미국 해안경비대와의 훈련 및 해군과의 합동 훈련을 지속하고 있으며, 말레이시아 역시 2019년 미 해군과의 양자훈련 25년 만에 처음으로 해안경비대를 포함했다. 미·중 경쟁하에서 이들이 미국과의 협력을 비교적 쉽게 확대할 수 있는 이유는 해안경비대가 주로 법 집행과 안전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갈등을 확대하지 않으면서도 국익을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해안경비대는 법에 의한 지배를 지지하면서 역내 규칙기반 질서를 강화하는데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다. 미국이 2022년 ‘인도-태평양 전략’에 지역 해안경비대에 대한 자문, 훈련, 전개, 역량강화를 확대한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필리핀 발라그타스(Balagtas)와 인도네시아 바탐(Batam)의 해안경비대 훈련센터에 교육과 장비, 자금을 지원하는 한편 2022년 필리핀 해안경비대에 1억 6천만 달러 상당의 장비를 제공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작년 11월 미 부통령의 필리핀 해안경비대 방문과 오스틴 국방장관의 “해안경비대에 대한 전례없는 투자” 발언도 동일한 맥락이다.


인태 전략을 통해 규칙기반 질서에 대한 의지를 표방한 한국도 BIMP-EAGA 국가 해안경비대와의 양자 및 소다자 협력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현재 한국 해양경찰청은 아세안 국가 중 인도네시아 및 싱가포르만 양해각서를 체결하였는데, 이를 필리핀, 말레이시아, 베트남 등으로 확대하고, 신규 ODA 사업의 적극적 발굴과 해안경비함정의 양어를 통해 국제 개발협력을 강화하는 노력이 요구된다. 또한 한국 해양경찰의 교육훈련에 대한 이들의 관심을 고려하여 해양치안기관 초청 연수나 현장체험, 위탁교육 등의 기회를 확대하고, 정보공유 협력, 해안경비대간 대화, 양자 및 소다자 훈련 등을 추진한다면 ‘글로벌 중추국가’로서의 한국, 그리고 올해로 창설 70주년을 맞는 한국의 해양경찰 위상도 제고할 수 있을 것이다.

 

 

 

 

 

 

 

 

-----------------------------------------------------------------------

1) 국가마다 해양법 집행기관을 지칭하는 명칭이 상이하나, 본고에서는 해안경비대로 통일한다.